김해김씨 금녕군 안경공

천자(天子) 황제 김수로 태황

가야인(김) 2010. 8. 5. 12:22

삼국유사에 김수로왕 천강(天降) 기록이 있는데 이것은 김수로왕이 천신족(天神族) 천손 족(天孫族)의 제왕으로서 천자(天子)요 신인(神人)이요 위대한 황제임을 나타내는 설화이다.
또 가락국이 중국천자의 속국이 아님을 나타내는 설화이다. 단군, 해부루, 박혁거세, 김알지 등의 설화도 이같은 의식에서 형성된 것이다.
김수로왕은 신라의 초청을 받아서 신라 주변 부족국가들의 분쟁을 잘 해결해 주었으며 그 를 접대하는 향연에 한지부에서는 지위가 낮은 사람을 보냈으므로 한지부 대인(大人)을 살
해하였다. 이 같은 사실은 김수로왕이 진왕(辰王)이요 가락국이 신라를 지배하는 막강한 강 대국임을 뜻한다.
동국총목(東國總目)의 별고(別考)에는 『변진(弁辰=卞辰) 12국이 모두 금관국에 예속되었 다. 금관국은 변진의 총주(總主)이다』라고 하였고, 양서(梁書)에 『신라와 백제가 가라(加
羅)에 부용(附庸)한다』고 하였다.
수서(隨書)에 신라가 처음에 백제에 붙어 있더니 고구려가 백제를 습격하므로 신라는 가락국에 붙고 말았다고 하였다. 중국의 북사(北史)에 "신라는 본래 백제에 붙어 있다가 가락국에 붙어 살면서 30대를 내려와 진평왕에 이르렀다."고 하였다.
다산 정약용은 가락가 위주(爲主)하고 신라가 부용(附庸)한다고 하였다.
개황록(開皇錄)이 있고 역대의 왕의 훙(薨)을 붕(崩)이라 한 것은 금관가락국이 황제의 나라임을 의미한다.

 

국사(國史)에서 제외된 가락국사
가야연합국은 고구려 백제 신라와 함께 사국(四國)을 형성하였으나 신라 경주김씨인 김부식은 신라의 정통성을 살리기 위해 가야사를 삼국사기에서 다루지 않았다. 즉 김수로왕은 삼한(三韓)의 총왕(總王)이요 제왕(帝王)이었다. 신라도 초기에 김수로왕의 지배를 받았다. 그러므로 이 사실을 무시하기 위해 가야사를 다루지 않았다. 또한 모화사대사상가인 그는 중국의 삼국을 모방하여 사국을 삼국으로 다루었다.
특히 신라의 정통성을 뚜렷이 하기 위해 가야사를 소외시켰다고 볼 수 있다. 가락국왕족이 신라에서 진골(眞骨)대우를 받은 것이라든가 최근 계속해서 발굴되고 있는 가야유물들은 가락국의 국위(國威)를 증명해주고 있다.

 

가락국초기에 시계가 있었다.
김일련(金一然)이 지은 삼국유사의 가락국기에 "徐徐 入闕 銅壺欲午"라는 글은 혼수를 실은 수례들이 서서히 입궐할 때 구리항아리가 정오를 가리키려 하더라"는 뜻이니 구리항아리는
곧 물시계 아니면 해시계이었음을 뜻한다. 서기 48년에 가락국에는 시계가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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