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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김씨 세손과 항렬에 대하여

가야인(김) 2009. 12. 26. 15:54

김해김씨 세손과 항렬에 대하여

 

김해김씨 시조 김수로(首露)왕 이시다.

시조대왕 휘수로(首露). 서기 42년 김해에 가락국을 세우고 500년 왕업의 기초를 닦았다. 48년 인도 아유타국 공주 허황옥을 왕후로 맞이하여 왕자 10형제와 공주 2자매를 두었다.

김해김씨 1세 이시다. [휘수로]

 

금녕군(경파) 시조는 김목경(金牧卿)이시다.

고려의 문관이셨고, 고려 충선왕때 문과에 급제하시었고, 품계는 三重大匡에 이르셨다. 이후 충혜왕때 이르러 조적의 난이 일어나자, 이를 평정하시어 그 공을 치하하시어 왕으로부터 금녕군[金寧君]에 봉해졌다. 그리하여 금녕군파라 한다.

또는 휘목경파, 경파라 한다.

휘목경은 존암을 딴 것이고 경파는 서울울 중심으로 거주하여 경(京)파라했다.

김해김씨 51세이며 금녕군(경파) 1세 이시다.[휘목경]

 

안경공파 시조 김영정(金永貞) 이시다.

증호조판서 진손(震孫)의 아들이며, 이조참판 영견(永堅)의 동생이다. 1475년 목천현감에 제수되었으며, 성절사검찰관으로 북경(北京)에 다녀왔다. 이듬해 사간원정언을 거쳐 1481년 사헌부지평·성균관직강을 역임하고, 1484년 예조정랑이 되었다. 1492년 행사헌부집의가 되고 1494년 봉상시정으로 백악·삼각산행향사(白岳三角山行香使)를 맡았다. 1497년(연산군 3) 대사간, 1498년 우부승지·대사헌을 거쳐 정조사로 북경에 다녀왔다. 1499년 지돈녕부사로 하정사에 발탁되어 다시 북경에 다녀왔으며, 1500년에도 도총관을 거쳐 정조사로 북경에 다녀왔다. 1502년 지돈녕부사를 거쳐 이듬해 전라도관찰사를 겸하였다. 1505년 사노비를 내수사에 소속시켰다 하여 비판을 받았으나 정조사로 다시 북경에 다녀왔다.

시호는 안경(安敬)이다. 그리하여 안경공파라 한다.

김해김씨 57세 금녕군 7세 안경공파 1세 이시다.[휘영정]

 

그러면 각 항렬자로 시조(휘수로)세수, 중시조(휘목경)세수, 안경공(휘영정)세수 를 알라 보자.

 

시조(휘수로)

중시조(휘목경)

안경공(휘영정)

돌림자

68世

18世

12世

제(濟)○

69世

19世

13世

○식(植)

70世

20世

14世

현(顯)

71世

21世

15世

○배(培)

72世

22世

16世

종(鍾)○

73世

23世

17世

○태泰/수洙

74세

24世

18世

영(榮)○

75世

25世

19世

○섭燮/겸謙

76世

26世

20世

재(載)○

77世

27世

21世

○진(鎭)

78世

28世

22世

호(浩)○

79世

29世

23世

○근(根)

80世

30世

24世

성性/병炳○

81世

31世

25世

○용用/곤坤

82世

32世

26世

석錫/호鎬○

83세

33世

27世

○淳(순)

84世

34世

28世

동(東)○

85世

35世

29世

○환煥/열烈

86世

36世

30世

중(重)○

87世

37世

31世

○용鎔/선善

88世

38世

32世

낙(洛)○

89世

39世

33世

○상(相)

80世

40世

34世

형炯/병炳○

81世

41世

35世

○기基/규奎

 

위 항렬자는 김해김씨 금녕군(휘목경, 경파)이하

참판공파, 횡성공파, 안경공파, 석성공파, 호참공파, 참찬공파, 봉상공파, 밀직사공파, 문간공파, 밀직공파, 평장사공파는 다 같다.

시조로 부터 내려오는 세수는 정확한 보첩이 없고 기록이 없어 확실치 않고 중시조로부터 세수를 한다.

태(泰)자/수(洙)자 돌림일 경우 금녕군(휘목경, 경파) 23세 안경공파 17세가 됩니다.

요즘은 항렬자를 따르지 않고 원하는 아름으로 지어 부른다 하지만 돌림자는 알아 두아야 하지 않을까요.

몇대손이 아니고/몇세손입니다.